세월호, 476명, 그리고 절대로 잊히지 않을 4월 16일. 사고 22일째. 진도 팽목항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고, 사고 희생자들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랐던 우리 갈망은 포기와 체념으로 변해왔다. 사건을 이해하고 싶어 원인을 찾던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알게 되면서, 치유는커녕 또 다른 무기력을 안겨주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진실에 대한 충격, 통제하기 어려운 분노, 기댈 곳 없는 좌절과 허망감. 이 참기 어려운 고통은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놓쳐버린 그들에게 미안하게도, 정말로 미안하게도, 우리는 조금씩 세월호 사고에 더 이상 낯설어하지 않으며, 그들을 구하지 못했던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되어 가고 있다. 가끔씩 울컥하면서도 더 이상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고, 도대체 믿기지 않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람의 적응력이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니까.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까 살기 위해서 잊어가고 있다. 좋건 싫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인간의 본능이고 사회를 지탱해 온 힘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있다. 잊고 있었지만, 세월호 이전에는 서해 훼리호, 충주 유람선, 천안함도 있었다. 그때도 우리는 생명을 덧없이 보내고 절망했고, 대책 없음에 후회했다. 그리고 세월호. 세월호가 모두에게 혼란스럽고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우리 믿음과는 달리 우리에겐 이만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두 사람 잘못으로만 보기엔 너무 큰 우리 사회 전체의 총체적인 부실함이 가져온 허망감과 절망감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은 겪을 만큼 겪어야 사그라지고, 상처는 시간을 두고 아물어 든다. 잘못된 일은 반성하고 잘하고 잘못한 것은 모두 다 반드시 가려내자.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화나고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후회스럽지만, 그것만 하지는 말자. 노란 리본으로 함께임을 공유하고, 빈소 방문으로 도움의 손길로 서로를 위로하자.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는 말자.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그래서 지금부터 뭘 할 것인지 답 찾기를 시작하자. 세월호는 우리가 경험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임을 보여주었고,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어디선가 누군가가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에는 전과 달리 현명하게 이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다시, 아이들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은 어른, 어떻게 하라고 자신 있게 얘기해 주는 윗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각자는 내가 있는 그곳에서 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모여서 국가가 되고, 각 의견이 모여서 사회를 바꾸는 정치가 된다. 사회의 문제가 개인의 변화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개인의 변화 없이는 사회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내 한 표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선택을 하는 대표자를 가질 수 있을 때, 세월호는 우리에게 교훈을 줄 수 있게 된다. 내가 세월호 선장이 아니고 승무원 박지영 씨가 될 수 있을 때 세월호 희생자들이 살아날 수 있다.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미래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줄 때다. 이제 과거를 배움 삼아 다른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출처: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4&no=70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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