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골판지로 만든 만두 판매자나 수입산 고기를 한우로 속여 파는 행위에 대해선 한마음으로 분노하지만, 세월호 단식투쟁지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 행동이나 일부 정치 후보자들의 청문회 결과로 밝혀진 표절이나 허위 재산 보도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한다. 더욱이 주변에서 겪는 사소하지만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사건은 도덕과 정의에 대한 우리의 잣대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우리가 가진 잣대를 시험해 보자.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 보고서를 베껴 냈다.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온 신입생이 문서 위조를 하였다. 불공정한 세금에 불만을 품고 탈세를 하였다. 회사에서 포스트잇 몇 개를 아들에게 가져다주었다. 자원봉사하는 곳에서 허락없이 점심 쿠폰을 몇 개 더 가져왔다. 이들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한가. 아니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한 번쯤은 용서를 받아야 할까. 어떤 이는 결정을 하려면 각 사례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혹은 이미 이런 행위들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진 않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도덕성을 포함해 사람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은 의사결정의 부정확성과 비논리성을 일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내림을 보고한다. 사람이 처한 상황과 조건은 번번이 다양하고, 우리는 점점 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고, 우리는 우리가 처한 모든 것을 다 고려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 답은 너무 명확하다. 우리는 정보가 아주 확실하고 나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 판단하게 된다. 이 판단이 옳고 그른가는 그다음의 일이다. 아니 결정을 내리고 나면 옳고 그름에 대한 복잡한 판단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잣대는 심하게 흔들린다.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더 흔들리고, 시간이 없을수록 더 움직이고, 여유가 없을수록 변화가 심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집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다. 나와 남에게 불신이 생기고, 관계와 삶이 혼란스러워지고,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불만이 많아지는 것도 우리들의 흔들리는 잣대와 관련이 있다. 잣대의 고정은 우리의 선제적 노력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결정을 내릴 때 모든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결정을 내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쉽지도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이 정공법은 바쁜 이 시대를 역행하는, 그래서 무용지물로 보인다. 그래서 제언한다. 아이들에겐 어려서부터 다양성을 고려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시키자. 아무리 힘든 것도 반복 연습으로 내 것이 되면 쉬워진다. 적어도 아이들에겐 연습할 기회가 있고, 이를 연습시킬 어른이 있다. 그리고 오늘이 바쁜 어른들이라면 나만의 룰을 만들어 보자. 마음이 안정되고 생각이 정리되는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가 도덕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지켜야 하는 3가지 법칙을 만들어보자. 그게 뭐든 결정의 순간에 잣대로 써보자. 법칙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 법칙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잣대가 흔들리는 축은 알고 있으니 내 판단은 더 근거가 있고 결정은 더 객관적이고 결과물은 더 옳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하는 스스로를 칭찬해주자. 출처: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09&aid=000332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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